제1회 국제 이란학 컨퍼런스 참관기
Posted in Uncategorized on June 18th, 2002Posted by semih
제1회 국제 이란학 컨퍼런스가 6월 17일 테헤란에서 개최되었다.
컨퍼런스 개막 행사는 이란 국영 방송국 국제 컨퍼런스장에서 개최되었고 이란 대통령 하타미의 연설과 함께 주요 학자 5명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하타미는 연설에서 “이란학이 [문명간의 대화]에 필수적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컨퍼런스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개막행사에는 400여명의 이란과 외국에서 온 이란학 관련 학자들과 관심자들이 참여했다.
오전 개막 행사를 마치고 행사 참가자들은 수십대의 미니버스를 나눠타고 실제로 4일간 컨퍼런스가 이뤄지는 테헤란 북부에 위치한 컨퍼런스장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테헤란 최북단에 위치한 팔레비 시대의 왕궁 중의 하나인 사으드어버드 궁궐 단지내에 있는 허페지야트 컨퍼런스장이 6월 17일부터 20일까지 4일간 컨퍼런스가 개최되는 장소이다. 이 컨퍼런스장은 이란의 주요 국제 컨퍼런스들이 개최되는 곳으로서 모든 시설이 최고급으로 잘 갖춰져 있었다.
컨퍼런스장에 도착해서 등록을 마치고 프로그램 책자를 받아드는 순간 이 컨퍼런스가 상당한 규모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컨퍼런스는 총 10개의 분과로 구분되어서 각 분과가 각각 다른 홀에서 4일간 아침 8시 30분 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개최되며 10개의 분과는 다음과 같다.(괄호 안의 숫자는 발표되는 논문의 갯수이다.)
문학(58), 경제(24), 역사-지리(46), 언어학(45), 정치-국제관계(40), 서지학(29), 인류학-민속학(44), 이란학 일반(37), 신학-철학-교육-학문의역사(47), 예술-고고학(57)
필자가 처음으로 참석한 곳은 이란문학 분과였다. 타지키스탄에서 온 한 학자가 “다리문학과 다리어”에 대해서 자신의 연구물을 발표하고 있었다.
라힘 모살머니연 교수의 페르시아어 발음은 부자연스럽고 타직어 처럼 좀 거칠었다. 그의 발표를 들으면서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이 이란과 같은 언어(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몸으로 다가왔다. 발음이 서로 어색할 뿐, 이란과 타지키스탄이 같은 언어-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또 다른 한 홀에서는 도쿄대학 역사학부의 노보 아키 콘도라는 젊은 학자가 “일본에서의 이란학의 과거와 현황”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일본에서는 몽골사 연구를 위해 처음으로 페르시아어 원문을 학자들이 직접 인용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일본에서의 페르시아어 이용 역사를 밝혔다. 마지막 결론에 가서 일본에서의 이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을 2가지로 들면서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밝혔다.
첫번째 문제는 언어의 한계이다. 일본 학자들이 이란을 연구한 것은 주로 일본어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에 학자들간의 학문교류에 큰 장애가 되고 있으며 이는 동시에 이란학 발전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학자들이 페르시아어나 영어로 자신의 연구물을 집필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두번째로는 이란 학자들과의 관계의 부족을 문제로 삼았다.
경제 분과에서는 이란의 정치경제 문제에 대해서 참가자들 간의 열띤 토론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란의 물문제에 대한 시급한 해결책에 대해서 한 젊은 학자가 목에 힘을 주며 말하였으며, 또 다른 방청석의 한 학자는 이란의 세금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경제분과에서 한가지 아주 인상이 깊었던 것은 앞의 토론 운영석에 전혀 빛을 못 보는 한 명의 시각장애자가 다른 3명의 학자와 함께 앉아서 토론을 하는 모습이었다.
엷은 미소를 띄면서 단호하면서도 강력하게 “국민들이 티무르 시대에 세금을 안내려고 했던 것은 바로 그 세금이 강제로 폭력과 함께 징수되었기 때문이지만, 오늘날 국민들이 세제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것은 세금 징수자가 국민들로부터 받은 세금을 국민들을 위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째날 컨퍼런스가 모두 끝나고 참석자들은 모두 이란 대통령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역시 참석자들은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미니버스에 탑승하여 이란의 최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인 엘라히에로 향했다. 정원이 마치 공원만큼이나 큰 집으로 참석자 2-300여명이 인도되었고 그곳에서 학자들과 이란학 관심자들은 자유롭게 둘러 모여 앉아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서 담소를 나눴다.
그곳에서 만난 한 러시아 학자는 “이란이 지금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으며 세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최근에 자기가 쓴 [20세기의 이란]이라는 책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했다.
그는 백발에다가 그의 얼굴만으로도 70세 가량 되어 보였었다. 후에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기자는 우연히 가까이서 그 러시아 노학자가 터키 앙카라에서 온 학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참으로 놀라웠던 것은 그 학자는 유창한 터키어로 그들과 대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중동학의 명성을 눈과 귀로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필자는 컨퍼런스장에서 만난 두 명의 이란 젊은이들과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그리고 몇몇 다른 가벼운 주제들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