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마디 네자드(Ahmadinejad) 그는 누구인가?
2005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던 아흐마디 네자드가 이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는 당선이후 이란 내부의 권력구조를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며 그 어떤 대통령 보다 더 많은 권력을 장악해 가고 있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국제사회에도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초라해 보이는 듯한 회색 잠바, 잘 다듬지 않은 듯이 보이는 수염, 외소해 보이는 외모.. 이 모든 것은 일반 서민의 대표임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이란의 우라늄 농축 성공 발표 이후에 그는 더욱 세상 이목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누구인가?
1956년 테헤란 동쪽의 사막도시 갸름싸르 근처의 어러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흐마디 네저드는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7 자녀 중 4번째 자녀였다. 대장장이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흐마디 네저드가 겨우 한 살이었을 때 테헤란으로 이주했다. 그는 테헤란 남쪽의 거친 이웃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 곳은 팔레비 왕조 전성기에 이슬람 근본주의의 반란을 위한 풍부한 토대를 제공하고 외국인을 싫어하고 가난과 좌절이 혼합된 곳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5년 아흐마디네저드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기 위해 엘모 사나트(Elm-o Sanaat) 대학교에 들어 갔다. 곧 아야톨라 루홀라흐 호메이니에 의해 일어난 이슬람 혁명의 소용돌이는 그를 학교에서 모스크로 가게 했다. 그는 이슬람 세계 혁명의 목적에 헌신하는 횃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세대에 합류했다.
이란의 혁명 시기에 엘모 사나트(Elm-o Sanaat) 대학에서의 학생 활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의해 좌우되었다. 아흐마디네저드는 곧 그들의 리더 중에 한명이 되었다. 그리고 팔레비 왕정이 무너진 뒤 그 대학교에서 이슬람 학생 조직을 만들었다.
1979년 엘모사나트 대학교 OSU의 대표가 되었다. OSU는 당시 호메이니의 가까운 친구이며 이슬람 성직자 리더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이었던 아야톨라 모하마드 베헤쉬티에 의해 창설된 기관인데, 그 창설 목적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지지자를 얻어가고 있던 반혁명 조직인 “모자헤딘에 칼끄”에 맞대응 하기 위해 대학교와 신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들게 되었다.
1956년 출생(갸름싸르, 어러던)
1976년 대입시험 130등으로 이란과학기술대 입학.
1984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입학.
1986년 이란-이라크 전쟁중 이슬람 혁명수비대 입대.
1987년 박사학위 수여
1993-97년 10월 마쿠,코이 지역 부시장 및 시장 역임, 아르다빌 주지사 역임.
1997-2003년 이란기술과학대 조교수.
2003년 5월 3일 테헤란 시장으로 임명됨.
2005년 6월 24일 이란 대통령으로 선출됨.
1979년 OSU는 미국 대사관 점거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OSU 중앙위원회는 아흐마디 네저드, 이브라힘 아스가르저데, 모흐센 미르더머디, 모흐센 카디봐르, 모흐센 어거저리, 압바스 압디 등으로 구성되었었는데, 이 중앙위원회 회원은 이맘 호메이니가 직접 정규적으로 추가시켰다.
다른 OSU 간부의 말에 의하면, 미대사관 습격 사건에 대한 생각은 미르더머디와 압디에 게서 나왔으며 아흐마디 네저드는 소련 대사관 습격도 제안하였다고 한다. 그 후 OSU 리더들은 하타미 주변으로 재집결하였으나 아흐마디 네저드는 극보수파 충성파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80년대 호메이니가 “이슬람 문화 혁명”이라고 부른 대학 탄압 시기에, 아흐마디 네저드와 OSU는 이슬람 문화혁명에 의견을 달리하는 교수나 학생들을 체포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잡힌 이들중 많은 수는 후에 숙청당하였다. 대학교들은 3년간 폐쇄되었고 아흐마디 네저드는 혁명 수비대에 들어갔다.
1980년대 초 아흐마디네저드는 혁명수비대의 국내안보 부서에서 일했고 악명 높은 심문자와 고문자로 유명해진다. 하타미 진영의 웹싸이트 버즈텁에 의하면, 아흐마디 네저드는 악명높은 에빈 형무소에서 사형집행자로 일한 적이 있다고 고발하였다. 에빈 형무소는 정치범들을 주로 수감하는 곳인데 80년대에 이 곳에서 수 천명의 정치범들이 숙청을 당하였다.
1986년 아흐마디 네자드는 혁명 수비대 특수부대의 고위직에 오르고 이란 서부 케르만샤 근처의 라마잔 부대에서 근무하였다. 라마잔 부대는 혁명수비대의 “국외 작전”의 본부였다. “국외 작전”이라는 말은 이란 국경 밖에서 테러 공격을 가하는 부대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케르만샤에서 아흐마디 네자드는 많은 국외 테러 활동에 참여하게 되고 수많은 혁명수비대 “국외작전”을 지휘하였다. 혁명수비대내에 꼬드스(예루살렘) 부대가 창설 되면서 아흐마디 네저드는 이 부대의 상급 사령관이 된다. 그는 중동과 유럽의 연쇄 암살을 주도했는데, 그 중에는 1989년 7월 비엔나에서 혁명수비대의 장교에 의해 암살당한 쿠르드 지도자 가셈로우의 암살도 포함된다. 혁명수비대의 자료에 의하면 아흐마디 네저드는 핵심 공격 기획자였다.
아흐마디 네자드는 이란 북서부에 있는 마쿠와 코이 지사로 4년간 일했다. 1993년 이슬람 문화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혁명수비대의 동료 장교였던 알리 라리자니는 그의 보좌관이 된다. 수 개월후, 그는 신설된 아르다빌주의 주지사로 임명되었다.
아흐마디 네자드는 1997년 하타미 정권에 의해 주지사에서 해임되었고 엘모 사나트 대학에서 강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주된 활동은 과격 이슬람 자경 조직인 “안싸레 헤즈볼라”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그는 2003년 4월 테헤란 시장이 되었고 그 이후에 그의 직위를 이용해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강한 네트웍인 “어버드갸런에 이란에 이슬라미”(이슬람 이란 개발자들)을 세워나갔다.
그의 정치 네트웍인 “어버드갸런”은 혁명수비대와 연계활동으로 2003년 테헤란시 선거와 2004년 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권자들의 선거참여율이 저조했던 것과 하타미 정권의 온건개혁파 정책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버드갸런은 이슬람공화국 창시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상과 정책을 다시 한번 부활시키기를 원하는 젊은 신 이슬람 원리주의자 집단이다. 이 집단은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의 지시에 의해 창설된 몇몇 극보수 집단들 중의 하나이다. 하메네이의 이러한 지시는 2000년 의회선거에서 하타미 진영이 승리한 이후에 내려진 것이다.
서구 분석가들은 아흐마디 네자드 정권하에서 더 많은 인권침해, 테러 지원, 핵무기 획득을 위한 노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 이슬람 진영은 다르게 그에 대해서 평가한다. 그는 서구세력의 문화적 공격으로 인해 나약해져가고 있는 이슬람 세계를 작게는 이란을 다시 한번 이슬람의 원리로 정화하고 자체적으로 힘을 길러 이슬람 세계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견재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나가고 있는 강력한 리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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